올해 초 국내에는 핸드볼 열풍이 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을 딴 여자핸드볼대표팀의 감동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시작된 핸드볼 열기는 일본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 재경기를 통해 절정에 올랐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시즌에만 관심을 받던 비인기 종목 핸드볼이 전국민의 관심을 끈 이번 사건은 스포츠업계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핸드볼에 열광했는가? 아니, 이렇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스포츠에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국적, 피부색, 언어 등이 주는 모든 제약을 떠나서 스포츠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느끼는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제는 스토리가 팔린다
유명한 모 축구 해설자가 경기 도중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각본 없는 드라마’. 우리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시종일관 어려운 경기를 하다 인저리 타임에 터지는 극적인 역전골에 관중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이러한 드라마 같은 경기도 스타디움의 관중과 집에서 TV로 시청하는 팬(앞으로는 스포츠 상품에 대한 소비자를 팬으로 지칭)들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같은 경기를 연출하는 것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의 역할이라면 이런 경기에 흥미를 가지고 보러 오게끔 하는 것은 구단 마케팅, 홍보 담당자들의 몫이다(물론 미디어 역시 중요하다. 특히 기자들은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드림 소사이어티’ 를 통해 미래의 상품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롤프 얀센의 이야기는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상품을 사지 않는다. 상품에 담긴 스토리를 산다. 스포츠 경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나 소설만이 스토리 자체를 상품으로 파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 역시 각각 갖고 있는 스토리다. 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수많은 스포츠 경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는 경기에 관심을 갖고 경기장으로 그리고 TV 앞으로 모여든다. 언제나 흥행에 성공하는 한일축구 경기는 양국 간의 역사적 배경과 기존의 수많은 명승부가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낸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빅매치보다 흥미 끄는 경기
비단 국가 간 경기가 아니어도 유사한 사례가 스포츠 현장에는 많이 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K리그 경기도 그 중 하나이다. 삼성하우젠 K리그 2006 후기리그 4라운드, 수원과 대전의 경기였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는 당시 해외파가 총 출동한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보다 많은 2만 8,763명의 관중이 경기를 보러 스타디움을 찾았다.
물론 수원이 최대 규모의 서포터스를 갖고 있고 당시 수원의 성적이 좋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두 팀 간의 대결 자체가 빅매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었다.
국가대표를 다수 보유하고 있고 레알 수원이라고 불리는 수원이 2003년 5월 4일 이후 3년 넘게 대전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까지 전적은 13전 8무 5패. 참고로 당시 리그 14개팀 중 수원은 2위, 대전은 13위였다. 이 경기는 사실 리그도 초반이고 두 팀의 전략상 서울-수원전과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힘든 기본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위 사례에서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스타 플레이어 없이도 충분히 팬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배경을 모든 팬들이 알고 있지는 않다. 서포터스나 마니아층이 아니면 알기 힘들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내용이 좀 더 잘 알려졌다면 다른 일반 팬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 그래서 구단 마케팅 담당자와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주 푼 보스턴 레드삭스
그동안 국내 스포츠 경기에 이러한 스토리가 있는 경기가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나름 다양한 종목에 걸쳐 일반인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필자 역시 딱히 떠오르는 스토리가 없다. 그렇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은 밤비노의 저주로 인해 86년만에 겨우 우승반지를 가질 수 있었다. 탄탄한 전력으로 매년 우승 후보로 꼽히던 보스턴은 그동안 밤비노의 저주를 풀 수 있을지가 열광적이기로 유명한 보스턴 팬들의 관심사였다. 비슷한 사례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블랙삭스 스캔들의 저주를 2005년에 풀었고, 이제 남은 시카고 컵스가 염소의 저주를 언제쯤 풀 것인지가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염소를 구장안에 들이지 못하게 한 것에 분노한 팬이 “다시는 리글리필드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 누가 알겠는가? 사실인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인지!)
이 외에도 한일전처럼 역사적 배경을 기본으로 한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 일본프로야구로 옮겨 다시 진행되고 있는 이승엽 선수와 타이론 우즈의 홈런왕 경쟁 등은 팬들이 스포츠 경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스포츠 스토리 만들기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스포츠 산업이 활성화 된 곳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다면 스토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스토리 작성을 위한 사전 작업이다. 흥미를 끌만한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경우 그 스토리를 뒷받침 해줄 객관적인 자료 확보 또한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수원과 대전의 사례도 경기 기록에서의 특이점을 통한 이슈가 가능했다.
이 선수는 그동안 어떤 활약과 기록을 갖고 있는지 이 팀은 어떤 역사를 갖고 운영되고 있는지 데이터를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정리해야 한다.
둘째, 선수와 팀 모두가 스토리를 공유해야 한다. 마케터나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스토리는 일시적인 가십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선수와 팀 모두가 스토리를 공유하고 해당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플레이해야 한다.
언론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그런 부분들을 팬들에게 표현해주면 더욱 좋다(물론, 지나친 의식으로 플레이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셋째, KISS(Keep It Simple&Short)다. 스토리는 기억하기 쉽게 간단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이 몰입하고 스토리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영화나 소설처럼 스토리를 가진 상품들은 종종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해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의 경우 경기 자체가 예측이 불가능한 스토리 요소를 갖추고 있기에 경기 시작까지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는 최대한 기억하기 쉽도록 해야 한다.
스토리는 구전된다
스포츠 스토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는데, 이러한 스토리가 있을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 간의 활발한 구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팬(소비자)들의 온라인 참여가 쉬워지고 활발해지면 이러한 구전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스토리만 만들면 그 전달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해준다. 뉴미디어를 통해 충분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에도 아직 전통적인 매체를 통한 단순한 정보 전달, 일반적인 메시지 전달에 치우쳐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것 이다.
국내 스포츠 구단들의 환경이 열악함은 잘 알고 있다. 몇 명의 담당자들이 선수단 관리부터 마케팅 기획, 미디어와 고객(가장 중요한 내부고객도 물론 포함이다. 외부고객보다 더 중요한 게 현실이다) 관리까지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시도들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그래서 필자가 제안하는 것이 스토리를 불어넣고 그것을 구전(Viral)시키는 것이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영구적으로 불러올 수도 있다.
선수와 팬이 흥이 나게 하는 게 스포츠 마케터의 역할이라 한다면 스포츠 마케터는 흥을 돋우기 위한 훌륭한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자. 모두의 눈동자를 반짝이게 할 재미있는 스토리가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2008년 코리아애드타임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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